2009. 1. 26. 10:54 책/픽션
마거릿 애트우드, 페넬로피아드 (The Penelopiad - The Myth of Penelope and Odysseus) (2005)
시녀이야기 (1985)와 The Blind Assassin (2000)에 이어 세번째로 접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페넬로피아드 (2005)는 여성주의적 상상력와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유머로 가득찬 작품이다.
이 책은 오디세우스가 20년간 방랑을 할 동안 정숙하게 그를 기다린 페넬로페와 그녀의 시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애트우드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서 말이다. 이 소설은 나처럼 호머의 오디세우스를 읽지 않아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한 가지 문제라면 호머의 해석을 읽기도 전에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글을 먼저 읽어버려서 일종의 편견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데 그렇다고 고작 200 페이지 남짓의 페넬로피아드를 읽기 위해 이제와서 오디세우스를 읽기에는 조금 벅차다.)
애트우드의 전작들처럼 이 책도 역시 진지하고 나름대로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전작들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책의 구성 덕택이다. 이 책에는 두 화자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데 하나는 페넬로페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페넬로페의 12명의 시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페넬로페의 이야기가 진지한 본편이라면 시녀들의 이야기는 노래와 패러디로 구성되어 있어 유쾌발랄하다. 이 책 마지막에 실려있는 애트우드의 노트를 보니 이는 그리스 연극의 형식을 빌린 것으로 그리스 연극에서는 본편이 진행되기 전에 본편을 패러디한 간막극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이 챕터들은 The Chorus Line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나는 이 챕터들을 통해 애트우드가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애트우드의 시는 아직 한번도 안 읽어봤는데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경쾌하고 아름다운 시들이 이 챕터들에서 등장하게 된다. (이 챕터들이 시만으로 구성된 건 아니다. 어떤 챕터는 시녀들의 인류학 강의로 구성되어 있고 -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페넬로페 이야기를 어떤식으로 재해석한 것인지에 대해 애트우드는 이 챕터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서술해버린다. - 어떤 챕터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재판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애트우드의 책들도 많고 그녀가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서 매우 기쁘다. 일단 애트우드의 다른 책들은 아껴두고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읽을 계획이다. (요즘 논픽션만 계속 읽었더니 픽션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졌다.)
*페넬로피아드가 국내에 번역되었는지 찾아보려다가 발견한 이 책에 대한 서평. 내가 쓴 글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해서 여기 링크를 걸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