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그다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성적인 팬이었던 적은 없는데 (그의 소설들이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그의 에세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예를 들면 재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즈 에세이'를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은 재즈 에세이보다 더 즐겁게 읽은 것 같다. 아직은 초보지만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도 했고, 또 초보자의 입장에서 숙련된 이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말이다. 
재즈 에세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루키는 이 책에서도 달리기 그 이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것처럼 달리기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최적의 소재가 아닌가 싶다. 몇 십 년간 마라톤에 매진해온 하루키는 감동적이고, 진지하고, 유머러스하게 자신의 인생과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처음 빌렸을 때가 내가 막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고 이제 그 이후로 한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같이 달리기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여전히 초보 수준이지만 그 한 달 동안 나는 꽤 많은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달리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달리기가 힘들다 싶을 때면 이 책을 펴 들고 조금씩 읽어나갔는데 이 책은 이를테면 나에게 계속 달리기를 할 모티베이션을 제공한 셈이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가보자면, 나는 하루키가 이렇게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그는 일 년에 한 번씩 마라톤에 참여하는데 이 책을 쓴 2006년까지 총 25번의 마라톤을 뛰었다. 몇 번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그는 보스톤 마라톤을 몇 차례나 뛰었다. 보스톤 마라톤은 일정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데 나의 나이대와 성별의 사람들은 3:40:59 안에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1마일을 8분 25초 안에 뛰는 수준인데 지금으로서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지금 내 스피드는 대충 1마일을 11분~11분 30초에 뛰는 수준이다. (그것도 고작 5마일 뛰면서). 하루키 너무 존경스럽다;; 
그는 단 한번이긴 하지만 울트라 마라톤도 완주했고 트라이애슬론도 몇 차례나 완주했다. 그는 달리기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소설가로서 계속 글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에 20년 넘는 기간을 꾸준히 달려왔다. 그는 울트라 마라톤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를 위해서는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그것은 소설을 쓰는데 지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달리기를 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계속 달리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부분에 무척이나 공감했다. 나도 지금 나와 함께 달리는 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이렇게 달리지도 못했을 거고 더 진지하게 달리기에 대해 고려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겨우 한 달에 불과하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금까지 맺은 인간관계와는 다른 편안함을 준다. 
나는 혼자서 일을 잘 처리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상담할 필요를 느낄 필요를 못 느끼는 그런 독립적인 인간은 아닌데 일상의 디테일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서 별로 이야기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아니면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시시콜콜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 털어 놓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된 후 대학원에서 사귄 내 친구들은 그에 대해 꽤 실망을 한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만큼 자신들을 가깝게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미묘했던 순간에 나는 뭔가 변명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기회를 놓쳐버렸고 그 이후에는 다시 그 일을 끄집어내서 설명하기에는 너무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설명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난 원래 이런 인간이야, 라고 하지 않고 좀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런건 조금 힘들다. 
그에 비해 달리기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좀 더 단순하다. 보통 많은 인간관계에 동반되는 미묘하고 복잡한 기류 같은 건 없다. 같이 만나서 달리고 달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피로감 없는 단순한 인간 관계는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는데 내 이야기 반, 책 이야기 반이다. 요즘 쓰는 글들이 다 이렇다. 이 블로그 제목을 Journal로 잡은 건 애시당초 이렇게 일기 쓰듯이 글을 쓰려고 한 거긴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계속 꾸준히 달리기를 한다면 나도 하루키처럼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은 정말 영롱하게 빛나는 책이다. 이 책 덕분에 하루키의 다른 글도 읽고 싶어졌다.)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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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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