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복잡한 책이다. 역시 인문학은 쉽지 않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인용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보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하지만 어디 실상이 그러한가. 평화주의자들마저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잔혹한 전쟁의 현실을 담은 사진이 전쟁을 멈출 수 없다면 전쟁 사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점에서 출발하여 전쟁 사진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전쟁 사진은 감상자에게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보며 은밀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전쟁 사진은 중립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여주는 듯 싶지만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e.g. 팔레스타인 희생자와 이스라엘 희생자.) 또한 전쟁의 희생자가 나와 같은 인종 혹은 같은 지역 출신인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미국인들에게 유럽의 전쟁과 아프리카의 전쟁 사진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떻게 이곳에서 저런 끔찍한 일이.)
전쟁 사진은 베트남전 때처럼 반전 운동을 촉발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잔혹함에 압도된 나머지 오히려 감상자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취하게 될 수 있다. (내가 뭘 한들 소용 있겠어. 인간은 항상 이런 잔인한 일을 저질러 왔는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쟁 사진에 노출되면서 무디어진다. 그렇다고 전쟁 사진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사진은 여전히 효과적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하며 지구 한켠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상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사진만으로 그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해답을 제시한 후 또 다시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글이 진행되니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런 이슈를 다룬 다른 책도 읽어본 적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따라가기 벅찬 책이긴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읽어볼만하다. (두껍지도 않으니.)
저자는 책 말미에 자신의 작업에 영감을 준 글들을 소개하는데 그 중 읽어보고 싶은 글:
Secular Icons: Looking at Photographs from Nazi Concentration Camps (논문)
Remembering to Forget: Holocaust Memory Through the Camera's Eye (책)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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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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