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읽게 된 책인데 기대했던 것만큼 현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책은 얇은데 (150 페이지 정도) 더 자세히 설명하면 더 좋았을 법한 부분은 너무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은 책 전반에 걸쳐 계속 반복되었다. 소로스의 철학적 패러다임, 현 상황에 대한 진단, 자신의 투자 전략, 정책 조언, 자신의 자선 단체가 하는 일 등이 책에서 뒤섞여 있어서 각각 신문의 칼럼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책으로는 좀 부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먼저 책 전반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이 만든 새로운 패러다임인 Reflexivity에 대한 설명에 할애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기존의 경제학 이론들은 금융 시장을 설명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그는 시장이 자가조절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결국에는 금융 시장도 균형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의문을 표하면서 자신의 이론 reflexivity를 들고 나온다. 그에 따르면 시장 참가자는 시장 상황을 이해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cognitive function) 그 상황을 조작하려고도 하기 때문에 (manipulative function) 시장이 알아서 균형점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시장에 대한 믿음이 결국은 금융시장 규제 완화로 이어져왔고 결국은 이런 파국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이제 equibrium theory에 대한 신봉을 버리고 자신의 패러다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기본적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는 알겠으나 자신의 생각이 혁신적인 패러다임이라는 그의 주장에는 의문이 간다. 대학교에서 기본적인 경제학 수업 몇 가지 밖에 듣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설마 그 많은 경제학자들이 저런 단순한 이론에 기대어 금융 시장을 설명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의 주장이 현 미국 정부 측의 경제적 패러다임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면 수긍이 가겠지만. (그런데 그의 설명을 보면 그는 정말 자신의 이론이 혁신적인 패러다임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책 후반부로 들어가면 현 경제 위기 상황에 대한 그의 진단이 들어간다. 그는 수퍼 버블이라는 가설을 통해 20세기 후반부의 버블을 설명하려 하는데 그는 수퍼 버블의 정체를 신용 확대 (credit expansion), 금융 시장의 국제화, 그리고 규제 완화로 설명한다. 대충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이것 역시 시장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인데 20세기 전반과 달리 신용이 엄청나게 확장하고, 다양한 금융 상품이 개발되고, 각국의 금융 시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금융 시장이 복잡하게 되어 더 섬세한 위험 관리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감독 관리 기능을 거의 시장에 맡기게 되면서 금융 시장이 완전히 통제 밖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그는 특히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새로운 금융 상품들을 별 규제 없이 허용해준 정부를 비판하는데 정부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금융 상품들의 리스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개발한 금융 기관들의 리스크 평가를 믿고 그러한 상품들을 허용해주었다. 그 결과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지 못하는 상품들이 시장에서 거래되었고 이러한 금융 기관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제 이번 위기를 통해 이 상품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드러나게 되었지만 이미 상황은 너무 늦어버렸다. 그는 금융시장의 일부분만이 아닌 전체가 위기를 겪고 있으며 현 시스템의 근본을 흔들고 있는 이번 위기가 이전 위기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며 그가 수퍼 버블이라고 설명한 시기가 이제 끝을 맺고 있으며 그는 이제 새로운 시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국발 금융 시장의 위기는 전세계적 공황으로 확장될 것인가. 그는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 근거로 그는 인도와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 성장, 오일과 원자재 생산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든다. 또 그는 미국이나 다른 서방 국가들의 보호주의 경향을 막기 위해 중국이 위완화 평가 절상을 이행하게 될 것인데 이것은 미국 내 소비재 가격 인상을 불러 일으켜 미국 경제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그는 예측한다. 또한 미국 달러는 이전 만큼의 위력을 잃을 것이며 결국 이번 위기를 통해 세계 정치 질서가 재편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다. (솔직히 나는 학부 때 경제학과 수업을 들으면서도 화폐 시장과 환율에 대한 설명은 한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잘 이해는 안되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그런가보다 하면서 그냥 읽어나갔다.) 

책 후반부에 대해 아쉬운 점이라면 금융 시장의 오랜 참가자로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줬으면 하는 부분은 너무 간략하게 한문장으로 요약해버려서 기본 지식이 부족한 나 같은 독자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긴지 감을 잡기 힘들고 그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reflexivity에 대한 설명에 책 전반주를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과 후반부의 실제 예는 그렇게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앞부분의 이론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그 이론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그 이론을 현실 금융 시장에 얼마나 잘 적용해서 보여줄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기대했는데 그의 설명은 그다지 기대에 못미쳤다. 시장 참가자들의 manipulative function에 대해 강조한만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장 참가자들의 행동이 금융 시장에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부분을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그의 설명은 또 다른 이론인 수퍼 버블 이론과 거시적이고 피상적인 설명에 그친다. 

소로스가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비판자 중 하나라는 건 비밀도 아닌데 그래서 마지막 정첵 제안 부문에서 그는 자신의 정책을 제안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현 위기를 이해도 못하고 제대로 위기 관리도 못할 것이라고 하며 다음 민주당 행정부가 현 미국 행정부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 근본주의를 배척하고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을 시행해줄 것을 기대한다. 

어쩌면 그가 이 책을 편 진정한 의도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좀 정리가 안된 책이긴 하지만 핵심은 명료하다. 부시 행정부와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틀렸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하에서 정책을 집행할 새로운 행정부이다. 어쩌면 그는 그의 이론 reflexivity에 따라 이 사회의 참가자로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끼쳐보고자 이 책을 출판한 것이 아닐까 하는 괜한 생각이 들었다. (책은 올해 5월에 출판되었다.)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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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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