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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7.09.10 빵과 튤립 (Pane e tulipani) (2000) 4

2008. 4. 27. 15:24 영상물

영화 21을 보고

영화에서 주인공은 하버드 의대 학비를 벌기 위해 MIT 블랙잭 팀에 가담하는데 그는 처음에는 의대 학비만 벌면 손털고 나오겠다고 다짐하지만 곧 도박으로 번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삶에 매혹당하고야 만다. 그래서 목표했던 의대 학비를 다 벌고 나서도 계속 팀에 머문다. 돈은 그렇게 매력적이다. 특히나 그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누가 그 매력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도박으로 번 돈으로 고가 의류, 악세사리들을 마구 사들이면서 도박에서 버는 돈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독백하는데 정말 그렇다. 저렇게 쉽게 판돈을 두 배로, 세 배로 벌어들일 수 있는데 그깟 소비가 대수랴. 그러나 이러한 불로소득에 대한 욕망은 대가를 치루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도 자신의 욕망에 대한 대가를 치룬다. 판돈이 두배, 세배로 돌아오는 세계에 빠지게 되면 그 앞에서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돈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러한 욕망은 무섭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치뤄야 할 개인 (혹은 사회)의 희생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Posted by Adella
영화는 첫장면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절벽과 그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을 비춘다. 소녀의 옷자락은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고 소녀는 신발을 벗어두고 낙화하듯 절벽에서 추락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는 지독히도 낯설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라크와 터키 국경 지대에 있는 쿠르드 족 난민촌이다. 처음 들어본 쿠르드어도, 난민촌의 풍경도,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잔뜩 등장하는 풍경도 낯설기 그지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작은 사회를 구축하고 위성TV 수신기를 설치하고 수리할 줄 아는 소년 ('위성'이라고 불리는)의 리더쉽 아래 스스로 살아나간다. 이 아이들은 사방에 널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여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 아이들이 제거한 지뢰는 누가 사는걸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영화는 잠시 지나가듯 제시하는데 아이들에게서 지뢰를 사들이는 상인과 흥정을 하던 '위성'은 그 상인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헐값에 사가지만 UN에 비싸게 팔아넘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상인을 비난을 한다. 지뢰제거는 UN의 목표 중 하나인데 그래서 지뢰제거를 촉진하기 위해 제거된 지뢰를 구매라도 하는걸까?

영화에 등장하는 위성TV는 이 영화의 낯설음을 증폭시켜준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있고 온 사방에 매설된 지뢰들로 둘러싸여인채 살고 있는 이들과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듯한 위성TV라니,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위성TV는 전쟁이 언제 터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러나 위성TV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죄다 영어로 제작된 것들 뿐이다. 이들은 TV가 전해주는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지만 그렇다고 이 낯선 언어가 갑자기 이해가 될 리는 없다. 그리하여 마을의 유지격인 노인들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위성'에게 뉴스를 해석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그는 휘항찬란한 영미권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넋이 나가고 해석해달라고 요구하는 장로들의 요구에 내일 비가 온데요, 라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절벽에서 추락한 소녀. 그녀의 사연은 무엇일까. 전쟁의 참혹함을 온 몸으로 겪은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이 난민촌에 흘러들어온 이 예쁘장한 소녀에게 '위성'은 관심을 표현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그런 것에는 관심없어 보인다. 거듭된 고통으로 이미 무감각해진듯한 그녀의 사연은 전쟁을 겪은 여성들이 쉽게 겪을만한 그런 일이다. 그것은 너무나 빈번하다는 점에서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고통스럽다.

소녀를 향한 '위성'의 계속된 구애와 난민촌의 아이들의 일상은 잔잔한듯 흘러가지만 국제적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과 미국군의 진군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이건 순전히 추정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분명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라크와 이란의 공동 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지역 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사실에서부터 영화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소한 영화의 스폰서들의 의도라도.) 그렇지만 분명히 이 영화는 단순한 프로파간다는 아니며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견해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계로 사람들을 조용히 초대한다. 영화는 관조하듯, 과장된 슬픔도 분노도 없이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드러나는 진실은 그것만으로도 강력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영화가 당연한 것처럼 보여주는 어떤 것들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그것이 당연한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비극적이다. 국제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당연한듯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잊어버리지만,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Adella
몇 년 전 항공편으로 터키를 떠날 때 나는 심한 눈폭풍으로 인해 공항에서 며칠이나 발을 동동 굴리며 기다려야 했다. 언제 비행기가 떠날지 모르니 공항에 꼼짝없이 묶여있어야 하는 형편이었고 며칠간 그렇게 지내니 피곤하고 짜증스러웠다. 특히나 에어 프랑스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일급 호텔을 제공하는 반면 아무런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 알 이탈리아에 대해 더 화가 났고.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비행기를 탔던 이탈리아인들은 얼마나 낙천적이고 유쾌했던지. 마침내 비행기가 터키를 떠나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 내린 이탈리아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들 얼싸안고 즐거워했다. 그들의 행복한 기운은 내게도 전염되어 피곤함에 얼굴을 굳히고 있던 나도 결국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 중 하나이다.
이탈리안 로맨틱 코메디 <빵과 튤립>은 그 때 보았던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대책없이 따스하고 유쾌한 영화이다.
16살, 18살의 남자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주부인 로살바는 가족과 단체관광을 떠난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버스에 타지 않았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가족들 덕분에 휴게소에 남겨지게 되고 데릴러 갈테니 거기서 기다리라고 호통을 치는 남편의 말을 듣는 대신 히치하이킹으로 집에 가려 한다. 그 와중에 그녀는 차를 태워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베네치아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베네치아로 행선지를 돌린다. 처음에는 베네치아를 한번 둘러본 이후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그녀는 곧 마음을 바꾸고 베네치아에 당분간 더 머물기로 결심한 후 꽃집에서 일자리를 잡는다. 남편한테 큰 소리 한번 못칠 것 같은 가정주부인 그녀지만 로살바는 천연덕스럽게 집 전화에 자신이 베네치아에서 일자리를 잡았다는 사실과 "가정주부에게도 휴가는 필요하잖아요?" 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로맨틱 코메디인만큼 이런 영화에서 로맨스가 빠질리가 없다. 돈이 떨어져 묵을 곳이 없어진 로살바에게 식당의 웨이터인 페르난도는 자신의 집에 묵게 해주는데 이 나이 많은 아저씨,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고풍스러운지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이다. 첫날 자신의 집에 묵게해주면서 로살바에게 하는 말이 이런식이다: "당신의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다면 문을 잠궈도 좋소." 말투가 매사에 이런 식이라서 로살바를 위해 마련해놓은 아침식사와 함께 식탁위에 올려놓은 쪽지는 한 편의 시처럼 유려하다.
한편 이 옆집에는 마사지업을 하는 순진한 아가씨가 살고 있는데 수도꼭지를 잠글 줄 몰라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든 이 아가씨를 도와주게 된 계기로 로살바는 그녀와도 친구가 된다.
이렇게 베네치아에서 행복한 일상이 흘러가는 동안 로살바의 남편은 추리 소설 읽기가 취미라는 구직자를 (로살바의 남편은 회사 사장이다) 사립탐정으로 고용해서 베네치아로 보내는데...
그 이후 이런저런 사건을 거쳐서 결국 로살바는 페르난도와 행복한 삶을 시작하고 이웃의 아가씨 역시 행복한 사랑을 시작한다. (누구와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 듯.) 로살바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아코디언을 다시 연주하게 되었고 페르난도는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이들은 오랫동안 잊었던 행복을 다시 찾고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이런 영화를 볼 때면 드는 생각.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개개인에게는 행복이자 구원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믿는자에게 구원이 찾아오리라.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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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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