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and future are the same, and we cannot change either, only know them more fully. My journey to the past changed nothing, but what I had learned had changed everything, and I understand that it could not have been otherwise."

We cannot change the either, only know them more fully. 이 단편 소설에서 제일 울림이 큰 문장이라서 (그리고 소설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고) 여러번 곱씹어 읽었다. 정말 그렇다. 소설의 인물들처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더라도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함으로써 온전히 이해할 순 있다. 얼마나 사실이며 근사한 이야기 주제인지. 나 역시 이런 경험을 종종 하지 않았던가.

"Nothing erases the past. There is repentance, there is atonement, and there is forgiveness. That is all, but that is enough."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 I agree. That is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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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della
이 책은 여성들이 왜 협상을 꺼리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어떻게 더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떻게 여성들이 성공적으로 협상을 할 수 있는가 팁을 제시하기보다는 왜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가에 더 방점을 맞추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self-help보다는 사회학 서적에 더 가까운 책이다.
저자들은 이 책을 위해 미국 각지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수 많은 여성들을 인터뷰한 결과와 각종 심리학 사회학 연구 분야의 성과를 기반으로 이 책을 서술하였기 때문에 이 책의 논지는 꽤 설득력이 있다. '어떻게' 보다는 '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왜 내가 협상을 시작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어려움을 겪는지 그 심리적 기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 테크닉을 설명하는 책보다 오히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분석 - 왜 여성은 남성보다 협상에 어려움을 겪는가 - 이 인종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요 초점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도 이 부분을 살짝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가령 사람들이 협상을 시작할 때 여성에게 더 많은 양보를 기대하고 여성을 상대할 때 더 공격적으로 협상을 한다는 연구 결과는 흑인에게도 적용된다는 결과가 이 책에 인용된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당시 우리 회사는 임금 차별 소송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고객은 자신이 같은 직급의 백인 동료보다 거의 1/3 정도의 임금 (연봉 + 보너스 + 스탁 옵션) 밖에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인종차별 소송을 시작했고 우리 회사는 그를 변호했다. 기업측의 핵심 주장은 우리 고객은 그의 백인 동료보다 연봉 협상을 제대로 못했을 뿐 인종 차별이 아니라는 것이었는데 이 두 사람과의 협상 과정에서 고용주측이 보여준 태도 - 우리 고객에게 훨씬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고 그의 백인 동료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함 - 와 두 사람의 협상 태도의 차이 - 우리 고객의 백인 동료는 훨씬 많은 것을 요구했다 - 는 이 책의 논지와 놀랍도록 일치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케이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회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는 이 책의 내용은 너무나 새로운 내용이라 현상을 설명하는 처음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왜'를 설명하는 중간 부분은 약간 뻔한 부분도 있고해서 (예: 사회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에게 다른 역할을 기대하고 다르게 사회화시킨다) 좀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어떻게 사회가 변화하여야 하는지, 또 여성들은 어떻게 성공적으로 협상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정리하는 부분은 유익했다. 중간 부분을 좀 더 압축하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여러모로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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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마라톤을 마치고 마라톤에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읽기 시작한 책. 이제 달리기를 시작한지 일년 반 정도가 되었고 하프 마라톤도 세차례 뛰었지만 마라톤은 또 전혀 다른 문제 아닌가. 한번 도전해볼까 싶다가도 또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첫 챕터를 읽고 마라톤 대회에 등록했다.
저자는 처음 몇 챕터를 마라톤을 달리는 것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할애한다. 내가 이 챕터들을 읽고 마라톤 대회에 등록한걸 보면 꽤 설득력 있는 듯. 그리고 트레이닝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데 지난 일년 반 동안 배운 것도 있지만 새로 알게된 것도 많았다. 특히 부상에 대해 얘기하는 챕터는 주의깊게 읽었다. 마라토너에게 필요한 식단이 어떤건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도 유익했고. 마지막 챕터는 대회 이후 빨리 회복하기 위해선 뭘 해야하는지 설명하는데 이 챕터를 읽으면서 왜 내가 지금 발목 부상을 입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대회 2시간 이내에 제대로 영양 보충을 해야된다는데 그것도 안했고 대회 이후 일주일 이상은 쉬어야 하는데 너무 조급하게 달리기를 시작해서 부상으로 이어진 듯 싶다. 여러가지를 많이 배웠다. 저자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도 이것저것 배우는 중. 정말 처음 시작할 때는 단순해 보였던 달리기였지만 가면 갈수록 알아야 할 점들이 많다는 걸 깨닫고 있다.
매우 유익한 책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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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della
이 책에 대해서는 Entitled Opinions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부활절 기념으로 스탠포드 대학 종교학 교수 Thomas Sheehan을 초대해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프로그램 호스트의 목표였으나 왠걸, 게스트는 그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채 왜 크리스챤들이 믿는 부활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에도 불구하고 Sheehan 교수는 자신이 독실한 로만 카톨릭 신자라고 했다.) 그의 설명에 흥미를 느낀 나는 그의 책을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이 책이 바로 The First Coming: How the Kingdom of God Became Christianity 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의 주장은 카톨릭의 교리에 완전히 반한다. 그는 죽은 뒤 3일만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부활절 스토리를 부인하고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이러한 신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 책에서 설명한다. 그에게 예수는 Kingdom of God을 온 생애에 걸쳐 실천한 선지자였지 신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는 크리스챤이 예수의 가르침을 완전히 왜곡하고 그의 가르침에 반하는 길을 걸었다고 주장한다.

부활절: 그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고 사망한 예수 사후에 어떻게 부활절 스토리가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예수의 사후 부활절 스토리는 두 가지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예수의 사도였던 시몬이 예수가 사후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증언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예수의 빈 무덤 발견이다. 시몬의 증언의 어디에도 예수의 육체가 부활하고 물리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얘기는 없다. 실제로 예수가 시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것은 영적인 차원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시몬은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빈무덤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른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빈 무덤 발견은 마가 복음서 16절에 처음 언급되는데 여기서도 예수의 육체가 부활했다는 언급은 없다. 빈 무덤에 있던 천사는 예수가 하늘로 올라갔고 무덤은 비어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저자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반응에 주목하는데 천사가 막달레나에게 사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라고 했음에도 그녀는 달아나서 아무에게도 자신이 전해들은 것을 전하지 않는다. 예수의 부활 소식은 믿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두려움만을 초래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별개의 이 두 스토리는 후기 복음서에 의해 부활절 스토리로 통합된다. 후기 복음서들은 마가 복음서에 온갖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이 이야기들에서 예수는 부활한 육체로 팔레스타인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 부활의 육체적 증거를 보여주고 사도들과 먹고 마신다.

예수의 정체: 그는 예수가 선지자에서 어떻게 신적인 존재로 탈바꿈 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그는 이 과정이 3단계를 거쳤다고 설명하는데 첫번째 단계에서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에 재현될 때 예수가 심판자로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할 때까지 예수는 그저 하나님의 delegate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고 믿은 초기 크리스챤들에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 사후 몇 십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기다렸던 하나님의 왕국은 도래하지 않는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자 이 시간 동안 예수의 지위는 애매하다. 그러자 크리스챤들은 예수는 미래의 심판자일 뿐 아니라 현재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고 있다고 믿는다. 처음에 크리스챤은 예수가 사망하였을 때 하나님이 예수를 입적했다고 설명하지만 그 시기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순간으로 앞당겨졌다가 다시 예수 탄생 당시로 그 시기는 앞당겨진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스토리가 탄생.) 그렇지만 이 시기까지도 예수는 여전히 하나님이 보낸 존재로 간주된다.

이 스토리는 그 이후 전혀 다른 레벨의 스토리로 도약한다. 이 다음 단계에서 예수는 인간의 육체를 빌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미 신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의 육체를 빌어 태어나고 죽음으로써 인류를 구원한다. 그리고 다시 그가 원래 있었던 하나님의 왕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같은 권능을 행사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러한 크리스챤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고 보는건가. 그가 이해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렇다. 예수는 유대교의 묵시록적인 믿음 - 미래의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와 인류에 대한 심판 - 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왕국은 이미 도래하였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미래에 이미 인간과 함께하고 있으며 우리가 해야할 일은 회개, 그리고 자비와 정의를 통해 하나님의 왕국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사후 크리스챤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로 묵시록적 믿음을 부활시켰고 모든 인간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라 예수라는 개별적 존재를 통한 실현되는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믿음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예수의 가르침에 완전히 반하는 것이며 예수를 우상화한 것이다.

종교라는 현상에는 매혹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매우 뜻깊게 다가왔다. 요즘 들어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은 증폭되었지만 종교적 믿음은 나의 생각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았는데 이런 식의 믿음도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종교가 전혀 불가능한 옵션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결국에는 내가 어떤 종교에도 귀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류의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저자의 소박하지만 굳건한 믿음은 정말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앞으로도 꾸준히 종교학/신학을 다루는 책을 읽어볼 계획이다. 아마 그 다음에 읽을 이 분야 책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친구가 추천해준 Anthony De Mello의 책이 될 듯 싶다.

Posted by Adella
이 책은 내가 주로 즐겨 읽는 장르의 책은 아닌데 (자아 찾기/여행 에세이) 예전에 친구가 추천해줬던게 불현듯 생각나서 읽게 된 책. 그래도 이런 장르의 책 치고는 그럭저럭 읽을만했다. 저자의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자는 힘겹게 이혼을 마무리 짓고 1년간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의 테마는 Eat, 인도의 테마는 Pray, 인도네시아의 테마는 Love이다. 이 책은 여행 기간, 책의 분량, 책의 제목을 세 장소에서의 이야기들에 균등하게 할애하고 있다. 난 이탈리아 얘기가 제일 재밌었는데 아마 그 챕터에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다. 나도 외국어를 배우는 걸 좋아하고 (저자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 나라로 간다.), 나도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먹고 한동안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저자와 스웨덴에서 온 그녀의 친구가 로마 &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보인 격한 반응 - 스웨덴 친구는 스톡홀롬에서는 뭐하러 감히 피자를 만드는 시도를 하느냐, 아니 음식은 뭐하러 만드냐며 격분 - 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었고), 나도 잠시라도 그렇게 유럽에서 살면서 외국어를 배우며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이 이야기는 이를테면 나한테는 동화 속 얘기와 같았다. 거기다 저자가 얼마나 재미있고 재치있게 글을 쓰는지 이 챕터는 정말 내내 키득거리면서 읽었다.

그에 비해 인도 & 인도네시아 얘기는 그냥 보통이였다. 친구가 재밌다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던게 화근이라면 화근일까. 난 이 책이 영성적 자아찾기 성향이 짙은 책인 줄 정말 몰랐다. 인도 & 인도네시아의 얘기의 중심이 그런거라서 난 좀 뜨악했다. 인도에서는 아예 힌두 종교 지도자의 사원에 가서 4개월간 지내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발리섬의 주술/치료사와의 얘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야기는 저자가 얼마나 이혼 때문에 고통 받았는지, 명상과 갖가지 종교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찾게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는데 미국인, 특히 뉴요커들이 어떻게 요가, 동양 종교, 철학에 매혹되었는지 그 서브 컬쳐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종교적 성향이 강한 자서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요즘 간혹 삶이 방향성을 잃고 부유한다고 느낄 때마다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 부럽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던 참이라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읽을 수도 있었지만 신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했다거나 신을 영접했다는 저자의 얘기는 나에게는 너무나 4차원 너머의 얘기라서 그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본적으로 이런 에세이를 안 좋아하는 이유가 자아도취적인 저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걸 극복하는 스토리를 싫어해서인데 이 부분이 딱 그런 스토리니. (이혼의 고통과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끊임없이 토로하는데 나중에는 좀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인도 이야기가 완전히 종교적 자아 찾기 여행 얘기라면 (내내 사원에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인도네시아 이야기는 그래도 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발리로 도피해서 살고 있는 서구인들의 공동체도 흥미로웠고 관광지에서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성찰도 꽤 흥미로웠다. 저자는 발리에서 여성 힐러와 친구가 되는데 가족/공동체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혼을 하고 딸과 살고 있는 이 힐러와 저자는 금세 의기투합한다. 이혼을 하면서 가족/공동체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채 힘겹게 살고 있는 이 여성을 안타깝게 여긴 저자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여성을 위해 집을 지어줄 돈을 모금하여 거금의 돈을 이 여성에게 안겨준다. 처음에는 이러한 믿을 수 없는 행운에 너무나 감격하고 고마워했던 그녀지만 후에 더 많은 돈을 은근히 요구하는 그녀에게 저자는 충격을 받지만 저자는 관광객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얻어낼 수 있는 건 최대한 악착같이 얻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관광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강구한다: 자기가 발리를 떠나기 전에 땅을 사고 집을 짓지 않으면 돈을 도로 가져가겠다고 협박하자 더 큰 돈이 없으면 땅을 살 수 없다고 하던 이 힐러는 순식간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계약을 마무리 한다. 나도 터키를 여행하면서 친근해 보이나 관광객인 나에게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지 고심하는 그들에게 실망하고 돌아선 적이 있어서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실망했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그녀와 여전히 친구로 남는 저자의 모습에는 좀 감탄했다. 아마 내가 인간관계에서 그런 속성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주고 받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고 상대가 뭔가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그렇지 싶다.

나서서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은 아닌데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의 동반자로 삼을만한 책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저자는 용감하게 홀로 여행을 떠나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처럼 세 곳의 여행지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만드는데 그런 태도는 참 좋았다. 사실 여행을 기억에 남게 만드는 건 단지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들 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니까.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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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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