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첫장면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절벽과 그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을 비춘다. 소녀의 옷자락은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고 소녀는 신발을 벗어두고 낙화하듯 절벽에서 추락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는 지독히도 낯설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라크와 터키 국경 지대에 있는 쿠르드 족 난민촌이다. 처음 들어본 쿠르드어도, 난민촌의 풍경도,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잔뜩 등장하는 풍경도 낯설기 그지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작은 사회를 구축하고 위성TV 수신기를 설치하고 수리할 줄 아는 소년 ('위성'이라고 불리는)의 리더쉽 아래 스스로 살아나간다. 이 아이들은 사방에 널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여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 아이들이 제거한 지뢰는 누가 사는걸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영화는 잠시 지나가듯 제시하는데 아이들에게서 지뢰를 사들이는 상인과 흥정을 하던 '위성'은 그 상인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헐값에 사가지만 UN에 비싸게 팔아넘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상인을 비난을 한다. 지뢰제거는 UN의 목표 중 하나인데 그래서 지뢰제거를 촉진하기 위해 제거된 지뢰를 구매라도 하는걸까?

영화에 등장하는 위성TV는 이 영화의 낯설음을 증폭시켜준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있고 온 사방에 매설된 지뢰들로 둘러싸여인채 살고 있는 이들과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듯한 위성TV라니,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위성TV는 전쟁이 언제 터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러나 위성TV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죄다 영어로 제작된 것들 뿐이다. 이들은 TV가 전해주는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지만 그렇다고 이 낯선 언어가 갑자기 이해가 될 리는 없다. 그리하여 마을의 유지격인 노인들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위성'에게 뉴스를 해석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그는 휘항찬란한 영미권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넋이 나가고 해석해달라고 요구하는 장로들의 요구에 내일 비가 온데요, 라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절벽에서 추락한 소녀. 그녀의 사연은 무엇일까. 전쟁의 참혹함을 온 몸으로 겪은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이 난민촌에 흘러들어온 이 예쁘장한 소녀에게 '위성'은 관심을 표현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그런 것에는 관심없어 보인다. 거듭된 고통으로 이미 무감각해진듯한 그녀의 사연은 전쟁을 겪은 여성들이 쉽게 겪을만한 그런 일이다. 그것은 너무나 빈번하다는 점에서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고통스럽다.

소녀를 향한 '위성'의 계속된 구애와 난민촌의 아이들의 일상은 잔잔한듯 흘러가지만 국제적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과 미국군의 진군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이건 순전히 추정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분명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라크와 이란의 공동 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지역 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사실에서부터 영화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소한 영화의 스폰서들의 의도라도.) 그렇지만 분명히 이 영화는 단순한 프로파간다는 아니며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견해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계로 사람들을 조용히 초대한다. 영화는 관조하듯, 과장된 슬픔도 분노도 없이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드러나는 진실은 그것만으로도 강력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영화가 당연한 것처럼 보여주는 어떤 것들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그것이 당연한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비극적이다. 국제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당연한듯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잊어버리지만,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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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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