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4. 07:25 책/논픽션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1997)
한국에서도 널리 소개되었던 <총, 균, 쇠>를 읽었다. 과학자가 쓴 역사책이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역사책. 이 책은 파푸아 뉴기니에 사는 얄리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의 친구인 얄리는 왜 서구 문명은 이렇게 발전했는데 자신의 고향은 이렇게 기술 발전을 이루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책은 서술 의도와 답이 매우 뚜렷하다. 많은 사람들이 문명간 불균등한 발전 속도를 인종간의 능력 차이로 설명하려고 하지만 저자는 그것은 인종간의 차이 때문에 아니라 주어진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의 탐험가들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신대륙 주민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직접적 원인은 이 책의 제목처럼 총, 균, 쇠 덕분이었지만 그러한 차이점이 발생하게 된 근원에는 환경의 차이가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결정적인 환경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식량 생산 환경: 유라시아 대륙은 다른 대륙들보다 농사와 가축에 적합한 동 식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에 많은 대형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론이지만 저자는 어째서 아프리카의 많은 대형 동물들이 가축에 적합하지 않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는 일찌감치 대형 동물들이 멸종하였다.
2) 축: 유라시아는 남북의 거리가 좁고 동서의 거리가 넓다. 동서로 퍼진 지역들은 대체로 기후나 환경이 비슷하여 동식물이나 기술 등이 비교적 쉽게 전파될 수 있었지만 동서가 좁고 남북의 거리가 넓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는 기후 차이로 인하여 동식물 기술 전파에 어려움을 겪었다. 저자는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는데 고대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농작물이나 가축은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전파되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북 아메리카 / 남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서 거의 전파가 안 되었고 아프리카에서도 사하라 사막 이남과 이북 사이에 교류가 거의 없었다.
3) 대륙간 교류: 아프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대륙간 교류가 가능하였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많은 섬들과 아메리카 대륙은 구대륙으로 부터 완전 고립되어 있어서 기술 발전이 더욱 더디게 되었다.
4) 땅의 넓이과 인구 밀도: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을수록 식량 생산 기술과 정치적 공동체 발전이 빠르게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도 유라시아 대륙은 다른 대륙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이 일종의 출발점이 되기를 원하며 마지막 단원에서는 다양한 연구 주제들을 제시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떠오를만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간략한 답을 한다. 예를 들어 이 책은 유라시아 대륙이 왜 다른 대륙보다 우위를 점했는가를 설명해주지만 왜 유럽이 중국을 앞서가게 되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저자는 그에 대해서 중국이 빠르게 정치적인 통합을 이룬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는 얘기를 한다. 이른 정치적 통합은 중국에 여러 가지 이점을 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층부의 잘못된 판단 하나가 전체 사회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중국은 유럽보다 훨씬 일찍 발전된 항해 기술을 보유했지만 후에 정치적 권력을 쥐게 된 집단이 항해 기술을 금지하면서 그 기술력의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반면 유럽은 발전이 느리고 따라서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그게 기술 도입에서는 어떤 이점을 주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한 왕가가 어떤 기술을 거부하더라도 다른 왕가에서 그 기술을 받아들이고 성공한다면 다른 집단들도 결국은 기술을 받아들여 그 기술이 사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한 시점에서의 이점이 다른 시점에서는 단점으로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꽤 유연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저자는 어떤 한가지 요소가모든 것을 결정한다, 라는 설명을 지양하고 다양한 요인들이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가 항변하는 것처럼 저자는 환경 결정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류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책 말미에는 더 읽을만한 책 리스트를 제공하는데 그래서 저자가 다룬 특정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더 많은 관련 서적을 읽을 수 있다. 나도 그 중에서 읽고 싶은 책들도 몇 권 발견했다:
The Great Human Diasporas
The Rise of the West
The Bell Curve: Intelligence and Class Structure in American Life
그리고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책도 다시 읽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