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답게 쓰여진 소설. 내 마음대로 분류 체계에 따르면 이 책은 마이클 커닝햄/테드 창 부류에 들어가는 책. 섬세하고 담담하게 비극도 비극답지 않게 그려내는 글 종류라고나 할까. 정말이지, 섬세하게 미묘한 감정들을 캐치해내는 저자의 감수성과 필력은 놀랍다.

나름 SF 소설로 분류되긴 하지만 SF적 통찰력이 놀라운 소설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력이 빛나는 소설. 소설을 읽으면서 끝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건 어떤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deferral에 대한 루머에 기대 마지막까지, 두 번의 donation을 지나고 나서도 그림을 그리던 Tommy나, 어차피 donor로 끝을 맺을텐데 이제 그만 쉬고 싶지 않냐는 질문들 끝없이 받지만 carer로서 오랫동안 소임을 다하는 Kathy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빛 바래지 않는 생생한 감정들 - 사랑, 우정, 질투, 미묘한 신경전과 같은 - 을 보면 이런게 인간이고 삶이지,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궁극적 결말에 비춰보면 사소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곡 읽고 싶다.   

 
Posted by Adella
"Past and future are the same, and we cannot change either, only know them more fully. My journey to the past changed nothing, but what I had learned had changed everything, and I understand that it could not have been otherwise."

We cannot change the either, only know them more fully. 이 단편 소설에서 제일 울림이 큰 문장이라서 (그리고 소설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고) 여러번 곱씹어 읽었다. 정말 그렇다. 소설의 인물들처럼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더라도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함으로써 온전히 이해할 순 있다. 얼마나 사실이며 근사한 이야기 주제인지. 나 역시 이런 경험을 종종 하지 않았던가.

"Nothing erases the past. There is repentance, there is atonement, and there is forgiveness. That is all, but that is enough."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 I agree. That is enough.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Adella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세 주인공 - 루크, 시몬, 캐서린 - 의 기이하지만 사랑스러운 이야기. 산업 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테러의 공포속에서 살아가는, 그리고 먼 미래를 살아가는 루크, 시몬, 캐서린을 이어주는 건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 월트 위트먼, 그리고 하얀 도자기 그릇이다.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과거, 현재, 미래의 뉴욕은 세밀하게 묘사되고, 주인공들은 강박적으로 월트 위트먼의 시를 인용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의 주인공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하얀 도자기 그릇은 이 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이어주기도 할 뿐더러 이 이야기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이야기인지 보여준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루크는 사고로 죽은 형 대신 공장에서 일을 해서 받은 첫 주급으로 캐서린을 위해 아무 쓸모도 없는 하얀 도자기 그릇을 산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캐서린은 도자기 수집을 하는 시몬에게 주기 위해 허름한 가게에서 하얀 도자기 그릇을 산다. 그리고 세번째 이야기에서 루크는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의 소유였지만 길거리에서 팔리고 있는 하얀 도자기 그릇을 다시 사들인다. 아무 쓸모도 없는, 그리고 길가에서, 혹은 허름한 가게에서 파는 이 하얀 도자기 그릇은 그러나 소중한 사람을 향해 뻗은 작은 손짓이다. 비록 그 감정을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각 이야기의 결말에서 주인공들은 (첫번째 이야기의 루크, 두번째 이야기의 캐서린, 세번째 이야기의 시몬) 소중한 이를 위해 이해하기 힘든 희생을 감수한다. 루크는 자기의 몸을 다치게 하고, 캐서린은 직업을 포함한 자신의 기반을 모두 버리고, 시몬은 미래를 포기한다. 어째서...? 라고 질문을 던질만큼, 그리고 자신들조차 자신의 선택을 다시 되돌아봐야 할 정도의 선택들이지만 선택을 내리는 그 순간만큼은 절박하고 진실되고, 아름답다.
위트먼의 시는 소설의 아주 중요한 모티브이지만 솔직히 시에 대해서는 젬병인지라 이 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세 이야기 모두에 인용되는 구절들이 있는데 그 구절이 각기 다른 이 이야기들에서 얼마나 절묘한 순간에 쓰이는지 정말 읽으면서 감탄을 했다. 이 시를 얼마나 많이 읽었으면 의미가 모호해 보이는 구절들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이야기와 연결시킬 수 있는건지.
이 소설은 '세월'과 꽤 유사하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서 세 가지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이야기들의 접점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캐릭터지만 같은 이름을 공유하는 루크, 캐서린, 시몬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인데 첫번째 이야기의 화자는 루크, 두번째에서는 캐서린, 세번째에서는 시몬이 화자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같은 이름을 공유하더라도 전혀 다른 캐릭터이긴 하지만 또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한데 마치 세 명에게 모두 발화할 기회를 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세번째 이야기의 시몬의 이야기를 들으면 두번째 이야기의 시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세월'처럼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세월'을 영화로 만든 제작사에서 영화 판권을 사들였다는데 기대된다. 그런데 세번째 이야기만 영화로 만든다는 얘기에 조금 실망. 이 세 이야기를 한 영화에 다 담아내는 게 좀 무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세월'처럼 세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영화로 만들면 너무 멋질 것 같은데. 세 이야기를 크게 관통하는 건 주인공의 이름들, 위트먼의 시, 하얀 도자기 그릇, 뉴욕이라는 배경이긴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세 이야기가 만다는 교차지점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런 부분을 영화로 만들면 정말 근사할 것 같다.
Posted by Adella
Part One: Millennium Approaches (1991)
Part Two: Perestroika (1992)

Part One과 Part Two를 다 읽은 지금, 나는 그의 작품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이 작품은 HBO 미니시리즈로도 만들어졌는데 지금 도서관에 대출 신청을 해놓았다. 실제 연극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드라마라도 너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걸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으니.

저자는 이 책에서 종교, 철학, 정치, 미국 사회의 문제, 위선, 사랑, 삶에 대한 지적이고 위트 넘치는 대화들의 대향연을 베푼다. 최근에 텀블러에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두고 싶은 구절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다 범상치 않은데 이렇게 기록해둔 구절들만 다시 읽어도 그 캐릭터에 대한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에이즈로 죽어가고 (Roy & Prior),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방황하고 (Joe), 삶의 의욕을 잃고 약물에 중독되어 있고 (Harper), 에이즈에 걸린 남자친구를 버리고 괴로워한다 (Louis). Hannah는 게이라고 선언한 아들과 실종된 며느리 소식을 듣고 솔트 레이크 시티의 집을 팔고 브루클린으로 올라오고, 흑인 드랙 퀸인 Belize는 죽어가는 Prior의 곁을 지키고 Roy의 담당 간호사가 된다. 이들 인물들이 얽키고 설키며 상황은 점차 엉망진창이 되어가지만 평화가 깨어지고 엉망이 된 상황에서 이들은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자신의 의지 없이 무기력하게 부유하던 Harper의 이야기 막바지의 대사는 영롱하게 빛난다:

"I can’t. I feel like shit but I’ve never felt more alive. I’ve finally found the secret of Mormon energy. Devastation. That’s what makes people migrate, build things. Heartbroken people do it, people who have lost love. Because I don’t think God loves His people any better than Joe loved me. The string was cut, and off they went. I have to go now. I’m ready to lose him. Armed with the truth."

그리고 Harper는 또다시 읇조린다: "Nothing’s lost forever. In this world, there is a kind of painful progress. Longing for what we’ve left behind, and dreaming ahead. At least I think so." 모든 것이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과거에 잃은 것을 그리워하고 아파하지만 그 고통을 모두 감내하고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고 진보이며, 역사이다.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고 ("making a leap into the unknown"), 직접 온몸으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또 다른 주요한 주제를 고르자면 아마 그건 용서가 아닐까 싶다. Prior는 Louis를 용서하고, Belize는 Roy를 용서하고, Harper는 Joe를 용서한다. 마지막에 Belize도 얘기하지 않는가: "It isn’t easy, it doesn’t count if it’s easy, it’s the hardest thing. Forgiveness. Which is maybe where love and justice finally meet. Peace, at least. Isn’t that what the Kaddish asks for?" 용서를 해야만 과거의 모든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을 얘기하면서 로이 콘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로이 콘은 매카시의 법률 고문이었던 아주 악명 높은 극우 반공주의자이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긴 게이였고 에이즈로 사망한 역사적 인물인데 이 인물이 Angels in America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다. 권력을 추구하며 도덕과 법, 규칙 따위는 우습게 아는 로이 콘을 통해 저자는 미국 사회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매혹적인 인물을 HBO 미니시리즈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다. 아 정말 얼마나 기대되는지.

책 마지막에는 저자 후기가 있는데 저자 후기를 읽고 더 반해버렸다. Kushner의 다른 작품들도 너무 기대된다. 요즘에는 영화 대본도 쓰기 시작했다고 해서 무슨 영화 대본을 썼나 찾아보니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을 이 사람이 썼다고 한다. 스필버그는 싫지만 이 사람이 대본을 썼다니 보고 싶기도 하다.
Posted by Adella
불어선생님이 빌려주셔서 읽은 불어로 된 만화책. 16살의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 솔직히 십대 이야기니까 뭐 크게 감명 깊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어서 뿌듯하다.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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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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