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 중 가장 정상적인 영화였지만 가장 우울한 영화이기도 했다. 난 영화를 보기 전에 내용은 미리 알아보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도 그냥 프랑소와 오종이라서 골랐고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몰랐다. 다만 행복해보이는 커플이 표지로 있는 걸 보고 로맨스 영화겠거니 생각했는데 표지가 완전 속임수였을 줄이야. (심지어 저런 장면은 영화에도 있지 않았다.) 하긴 프랑소와 오종이 평범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리 없는데 도대체 기대할 걸 기대했어야지. 
영화는 커플이 이혼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단지 이미 둘의 관계가 이혼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우울한 건 아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행복했던 커플도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수준을 넘어서 어둡다. 이전에 본 영화들에서도 오종은 '정상적인' 이성애적 관계와 정절이라는 관념을 조롱했지만 그 영화들이 나름 유쾌 발랄했다면 (최소한 그런 탈이라도 쓰고 있었다면) 이 영화에서 오종은 이러한 문제 의식을 정면으로, 진지하게 다룬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독의 인간 관계의 본질과 인간성에 대한 회의, 의구심이 이 영화를 어둡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해할 수 없거나 혐오감이 들게 하는 행동들을 반복한다: 아내를 강간하는 남편, 남편을 orgy에 참가하게 만들고 그것을 관찰하는 아내 - 이건 실제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아니고 남편이 설명을 함 -, 아내가 출산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늑장을 부리다 한참 후에야 병원에 나타나고 또 금세 사라지는 남편, 결혼식날 밤 외도를 하는 아내. 이러한 일들이 둘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했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이들은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한다. 이들이 처음 만나는 순간마저도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 남자는 4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휴가차 온 휴양지에서 여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조차도 그래서 기만적이다. 
나에게 이 영화는 너무나 냉소적인 영화인데 이 영화의 리뷰를 보니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사랑하는 현재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영화로 읽는다. 사람들의 관점은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p.s. 그나저나 영화의 메인 테마 음악이 참 좋았다. 아래 비디오는 팬이 영화의 주요 장면들과 메인 테마 곡 (Paolo Conte의 Sparring Partner)를 묶어서 만든 영상. 프랑소와 오종의 영화는 장면 장면들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워서 다시 보고 싶게 만든다. 결혼식 장면이나 마리온이 집에서 춤추는 장면같은 건 잊지 못할 듯.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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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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