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주로 즐겨 읽는 장르의 책은 아닌데 (자아 찾기/여행 에세이) 예전에 친구가 추천해줬던게 불현듯 생각나서 읽게 된 책. 그래도 이런 장르의 책 치고는 그럭저럭 읽을만했다. 저자의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자는 힘겹게 이혼을 마무리 짓고 1년간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의 테마는 Eat, 인도의 테마는 Pray, 인도네시아의 테마는 Love이다. 이 책은 여행 기간, 책의 분량, 책의 제목을 세 장소에서의 이야기들에 균등하게 할애하고 있다. 난 이탈리아 얘기가 제일 재밌었는데 아마 그 챕터에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다. 나도 외국어를 배우는 걸 좋아하고 (저자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 나라로 간다.), 나도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먹고 한동안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저자와 스웨덴에서 온 그녀의 친구가 로마 & 나폴리에서 피자를 먹고 보인 격한 반응 - 스웨덴 친구는 스톡홀롬에서는 뭐하러 감히 피자를 만드는 시도를 하느냐, 아니 음식은 뭐하러 만드냐며 격분 - 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었고), 나도 잠시라도 그렇게 유럽에서 살면서 외국어를 배우며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이 이야기는 이를테면 나한테는 동화 속 얘기와 같았다. 거기다 저자가 얼마나 재미있고 재치있게 글을 쓰는지 이 챕터는 정말 내내 키득거리면서 읽었다.

그에 비해 인도 & 인도네시아 얘기는 그냥 보통이였다. 친구가 재밌다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몰랐던게 화근이라면 화근일까. 난 이 책이 영성적 자아찾기 성향이 짙은 책인 줄 정말 몰랐다. 인도 & 인도네시아의 얘기의 중심이 그런거라서 난 좀 뜨악했다. 인도에서는 아예 힌두 종교 지도자의 사원에 가서 4개월간 지내고 인도네시아에서도 발리섬의 주술/치료사와의 얘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야기는 저자가 얼마나 이혼 때문에 고통 받았는지, 명상과 갖가지 종교적 경험을 통해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찾게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는데 미국인, 특히 뉴요커들이 어떻게 요가, 동양 종교, 철학에 매혹되었는지 그 서브 컬쳐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흥미로웠지만 종교적 성향이 강한 자서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나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요즘 간혹 삶이 방향성을 잃고 부유한다고 느낄 때마다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 부럽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던 참이라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읽을 수도 있었지만 신이 자신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했다거나 신을 영접했다는 저자의 얘기는 나에게는 너무나 4차원 너머의 얘기라서 그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본적으로 이런 에세이를 안 좋아하는 이유가 자아도취적인 저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그걸 극복하는 스토리를 싫어해서인데 이 부분이 딱 그런 스토리니. (이혼의 고통과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끊임없이 토로하는데 나중에는 좀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인도 이야기가 완전히 종교적 자아 찾기 여행 얘기라면 (내내 사원에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인도네시아 이야기는 그래도 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발리로 도피해서 살고 있는 서구인들의 공동체도 흥미로웠고 관광지에서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성찰도 꽤 흥미로웠다. 저자는 발리에서 여성 힐러와 친구가 되는데 가족/공동체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혼을 하고 딸과 살고 있는 이 힐러와 저자는 금세 의기투합한다. 이혼을 하면서 가족/공동체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채 힘겹게 살고 있는 이 여성을 안타깝게 여긴 저자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 여성을 위해 집을 지어줄 돈을 모금하여 거금의 돈을 이 여성에게 안겨준다. 처음에는 이러한 믿을 수 없는 행운에 너무나 감격하고 고마워했던 그녀지만 후에 더 많은 돈을 은근히 요구하는 그녀에게 저자는 충격을 받지만 저자는 관광객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얻어낼 수 있는 건 최대한 악착같이 얻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관광지 지역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는 동시에 해결책을 강구한다: 자기가 발리를 떠나기 전에 땅을 사고 집을 짓지 않으면 돈을 도로 가져가겠다고 협박하자 더 큰 돈이 없으면 땅을 살 수 없다고 하던 이 힐러는 순식간에 땅을 사고 집을 짓는 계약을 마무리 한다. 나도 터키를 여행하면서 친근해 보이나 관광객인 나에게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지 고심하는 그들에게 실망하고 돌아선 적이 있어서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실망했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고 그녀와 여전히 친구로 남는 저자의 모습에는 좀 감탄했다. 아마 내가 인간관계에서 그런 속성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주고 받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고 상대가 뭔가를 기대하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서 그렇지 싶다.

나서서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은 아닌데 여행을 떠난다면 여행의 동반자로 삼을만한 책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저자는 용감하게 홀로 여행을 떠나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처럼 세 곳의 여행지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만드는데 그런 태도는 참 좋았다. 사실 여행을 기억에 남게 만드는 건 단지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들 뿐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니까.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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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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