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tle Cry of Freedom을 읽고 난 후 남북전쟁 이후의 남부의 사람들에 흥미가 생겨서 읽게 된 책이다. 책의 뒷편 표지를 보니 Battle Cry of Freedom 저자의 추천 문구가 인용되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기분은 좀 복잡하다. 이 책에는 남북전쟁, 특히 남부군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라서 더욱 그렇다. 남부군에 속했던 선조들의 영광을 기리는 단체 소속 회원들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유해해 보이지 않는다), 남북전쟁 당시의 생활상, 특히 병사들의 생활상을 재현하는 취미를 가진 이들도 있는가 하면 (역시 그렇게 유해해 보이지 않는다), 흑인이 백인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며 유대인 음모론을 주창하는 KKK 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도 있고 (유해하다) 그저 비참한 남부의 현실을 잊기 위해 과거의 영광된 날들 (이라고 그들이 믿고 있는)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다. (가엾다.)  

미국은 어떠어떠하다 라고 정의하기 어려울만큼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사실을 더 절감했다. 가끔 신문에서 어느주에서 의사당에 걸려 있던 남부기를 내리려고 했는데 반대에 직면했다더라, 라던가 어느 주의 법원에서 법원 건물에 걸려 있던 십계명을 치우려고 했더니 또 난리가 났더라, 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때 그 기사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100년도 전에 이미 패배한 남부군의 깃발을 지금까지 걸어놨다는게 더 이상하고 어이없게 법원에 십계명은 왜 걸려있나 종교 단체도 아닌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남부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어째서 그런 것들이 이슈가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저자는 남북전쟁 때 남부군에 가담했던 주들을 여행하면서 어떻게 남북전쟁이 아직도 현재적 이슈가 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가령 버지니아 리치몬드에는 Monument Avenue가 있는데 이곳에는 남부군의 군 지도자들의 동상들이 세워져있다. 저자가 이 여행을 할 동안 리치몬드 시는 리치몬드 태생의 흑인 테니스 선수의 동상을 Monument Avenue에 세우려 한다. 그러자 논란이 벌어지는데 어떤 백인들은 남부군의 지도자 동상들이 세워진 신성한 곳에 관련 없는 동상을 설치하려 한다면서 반대하고 어떤 흑인들은 반역자이며 노예제 옹호자였던 이들 틈에 흑인 스포츠 영웅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모욕이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들은 통합의 의미에서 계획대로 Monument Avenue에 그의 동상을 세우자고 주장한다. 앨라배마의 한 도시에서는 고등학교 농구팀 이름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데 그 농구팀의 애칭이 남부군을 가리키는 Rebels다. 이 이름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여 이름을 바꾸자는 건의가 들어오는데 일부 백인들은 이 제안에 격렬하게 반대를 한다. 또 어떤 곳에서는 공공 주택가를 개발하는데 그 단지 이름이 노예상인이였으며 남부군의 가장 무도한 학살자 (물론 남부의 군 지도자이다)였던 이의 이름을 땄다는 사실 때문에 논란이 일어난다. 특히나 이 주택단지의 거주민이 대부분 흑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주택단지의 이름은 결국 민권운동의 지도자의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이 책에는 남북전쟁과 관련된 온갖 에피소드들 중 가장 비극적인 사건도 등장하는데 이 사건은 캔터키에서 벌어진다. 한 백인 커플이 허니문을 떠나는데 가는 길목에 주유소에 잠시 들린다. 이 백인 커플의 차는 남부기로 치장되어 있는데 그 주유소에서 배회하고 있던 흑인 소년들은 이 남부기에 모욕감을 느끼고 이들 커플 차를 추격한다. 한 흑인 소년이 마침 총을 가지고 있었고 이 백인 커플 차를 향해 총을 쏘는데 백인 남자가 이 총을 맞고 죽는다.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이 일대에 크로스 버닝 (Cross Burning) 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이 작은 마을은 전국적인 관심을 받게 되고 FBI, NAACP (전 미국 유색인종 지위 향상 협회), 그리고 남부군 옹호/찬양 단체들이 밀려든다. 남부군 옹호/찬양 단체들은 남부기로 인해 죽은 이 남자를 자신들의 영웅으로 만들기 바쁜데 정작 죽은이는 남북전쟁과 남부군의 가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의 부인에 따르면 그가 소유하던 차도 빨간색이고 남부기도 빨간색이라 잘 어울려서 장식으로 썼을 뿐이다. 그러나 저 단체들에게 그런 점은 안중 밖이고 고인은 새로운 영웅으로 탄생한다. 
이 남자를 죽인 흑인 소년도 역시 남부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는 원래 시카고 출신인데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아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조용하게 지내라며 캔터키 친척집에 보내면서 이 소년은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는 남부기가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그의 흑인 친구들이 남부기에 모욕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이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를 희미하게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 날 밤 사건을 저지른 15살의 소년은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조금 더 덜 무거운 에피소드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로 알려진 조지아는 이와 관련된 관광 지역들을 개발하였고, 이 소설에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일본인 관광객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저자는 비비안 리와 꼭 닮아서 스칼렛 오하라 역을 연기하는 여성을 만나고 (그녀는 일본에 초대 된 적도 있고 천황과 천황비도 직접 만났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애슐리의 집 Twelve Oaks의 모델이 된 집이라는 집에도 가보고, Tara로 추정되는 곳에도 가본다. 재미있는 건 이 소설의 모델이 되었다는 곳들을 탐험한 후 저자는 시의 역사가에게 이것이 사실이냐고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하는데 이 역사가는 자신이 마가렛 미첼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마가렛 미첼은 소설 배경이 되는 시기의 이 지역 사람들의 이름을 대조해보고 자신의 주인공들과 겹치지 이름이 없도록 신중을 기했으며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을 탐방하여 자신이 묘사하는 지형과 유사한 곳이 없도록 재차 확인을 했다. 그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세계과 완전히 픽션의 세계에만 머물기를 바랬으며 어떤 지역 혹은 사람이 이 소설의 실제 모델임을 자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랬다. 그런 그녀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대성공을 한 이후 조지아 주는 이 역사가의 도움을 통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투어 루트를 개발했고 마가렛 미첼이 그 점에 매우 화를 냈다는 것이 이 역사가의 이야기였다.

남부군에 애착과 향수를 가지며 남부군을 기리는 것들에 집요하게 집착을 하는 이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나는 점차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던 이 이야기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승리자인 북부군에 의해 쓰여진 역사를 다시 쓰고 싶어하며 남부군을 기리는 동상, 기념물에 목숨을 건다. 자신들의 반동적인 역사관에 따라 서술한 역사책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신들의 자녀를 구미에 맞게 가르치기 위해 홈스쿨링을 한다. 역사 서술을 둘러싼 이 전쟁은 우리에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지 않는가. 원치 않은 방식으로 인간 사회의 보편성을 재확인한 기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 독특한 인물들이긴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을 통해 남부 사회를 조명한다. 신화화되고 왜곡된 과거의 영광을 제외하면 즐거운 일도 긍정적인 일도 없는 침체되고 빈곤한 남부 사회를 말이다. 민주당원인 내 친구는 부시의 8년 집권 이후에도 공화당이 50%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 도대체 뇌가 없는 거 아니냐고 투덜거렸지만 남북전쟁을 통해 과거의 영광과 부를 모두 북부에게 빼앗겼고 그래서 지금도 남부가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가치를 대변해주는 공화당에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닌 것이라고,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결코 이성적인 존재가 아닌데 정치에만 있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 책은 일종의 테마 여행기인 셈이기도 한데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은 저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들리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다른 여행의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여행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물론 나는 저자의 탐험심 넘치는 행각들을 보며 여성 여행자인 나로서는 따라하기에는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전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종군기자인데 미국에 돌아와서 이 책을 저술하기 전 중동에서 몇 년간 지냈다. 중동에서의 기록을 담은 책이 Baghdad without a Map and Other Misadventures in Arabia 인데 이 책도 언제 읽어 보고 싶다.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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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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