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 03:46 책/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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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2.02 어슐러 르 귄, 라비니아 (Lavinia) (2008) 3
- 2009.01.26 마거릿 애트우드, 페넬로피아드 (The Penelopiad - The Myth of Penelope and Odysseus) (2005) 6
- 2008.04.27 프란츠 카프카, 소송 (The Trial) (1925)
- 2008.03.14 안나 가발다, 함께 있을 수 있다면(원제: Ensemble C'est Tout; 영문판: Hunting and Gathering) 4
- 2008.03.05 마이클 커닝햄, 세상 끝의 사랑 (A Home At the End of the World) (1990) 12
2009. 1. 26. 10:54 책/픽션
마거릿 애트우드, 페넬로피아드 (The Penelopiad - The Myth of Penelope and Odysseus) (2005)
시녀이야기 (1985)와 The Blind Assassin (2000)에 이어 세번째로 접하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페넬로피아드 (2005)는 여성주의적 상상력와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유머로 가득찬 작품이다.
이 책은 오디세우스가 20년간 방랑을 할 동안 정숙하게 그를 기다린 페넬로페와 그녀의 시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애트우드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서 말이다. 이 소설은 나처럼 호머의 오디세우스를 읽지 않아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한 가지 문제라면 호머의 해석을 읽기도 전에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글을 먼저 읽어버려서 일종의 편견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건데 그렇다고 고작 200 페이지 남짓의 페넬로피아드를 읽기 위해 이제와서 오디세우스를 읽기에는 조금 벅차다.)
애트우드의 전작들처럼 이 책도 역시 진지하고 나름대로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전작들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이 책의 구성 덕택이다. 이 책에는 두 화자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데 하나는 페넬로페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페넬로페의 12명의 시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페넬로페의 이야기가 진지한 본편이라면 시녀들의 이야기는 노래와 패러디로 구성되어 있어 유쾌발랄하다. 이 책 마지막에 실려있는 애트우드의 노트를 보니 이는 그리스 연극의 형식을 빌린 것으로 그리스 연극에서는 본편이 진행되기 전에 본편을 패러디한 간막극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이 챕터들은 The Chorus Line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나는 이 챕터들을 통해 애트우드가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애트우드의 시는 아직 한번도 안 읽어봤는데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경쾌하고 아름다운 시들이 이 챕터들에서 등장하게 된다. (이 챕터들이 시만으로 구성된 건 아니다. 어떤 챕터는 시녀들의 인류학 강의로 구성되어 있고 -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웃었다. 페넬로페 이야기를 어떤식으로 재해석한 것인지에 대해 애트우드는 이 챕터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서술해버린다. - 어떤 챕터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재판 형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애트우드의 책들도 많고 그녀가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서 매우 기쁘다. 일단 애트우드의 다른 책들은 아껴두고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소설을 읽을 계획이다. (요즘 논픽션만 계속 읽었더니 픽션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졌다.)
*페넬로피아드가 국내에 번역되었는지 찾아보려다가 발견한 이 책에 대한 서평. 내가 쓴 글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해서 여기 링크를 걸어 둔다.
2008. 4. 27. 15:53 책/픽션
프란츠 카프카, 소송 (The Trial) (1925)
그의 소설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현실과 닮았는데 그것은 이 재판 과정이 지극히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외부인들은 도무지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다. 재판정 내부와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만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대대로 판사들의 초상화를 그려왔다는 화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투명성이 결여된 정부 시스템은 실제로 지금도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카프카가 그리는 세계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2008. 3. 14. 09:59 책/픽션
안나 가발다, 함께 있을 수 있다면(원제: Ensemble C'est Tout; 영문판: Hunting and Gathering)
마이클 커닝햄의 책을 읽고 이 책을 연달아 읽어서 그런지 두 책이 조금은 유사하다고 느꼈는데 Hunting and Gathering은 세상 끝의 사랑의 더 행복한 버전이라고나 할까. 두 책의 유사한 점을 꼽아본다면:
1. 전혀 관계 없는 세 명이 같이 살게 된다. (Jonathan, Bobby, Clare/Philibert, Franck, Camille)
2. 주인공 중 한 명이 요리사다. (Bobby/Franck)
3. 셋 다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4. 그 중 두 명이 사랑에 빠진다. (Jonathan & Clare/Franck & Camille)
5. 레스토랑을 차린다.
6. 주인공 중 한 명은 물려받은 거액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 (Clare/Camille)
7. 불행한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무엇보다도 두 책을 한 장르 아래에 묶을 수 있는 건 두 책 모두에서 주인공들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공동체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좀 더 맞서 살아갈 수 있을만한 곳이 된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안나 가발다의 글은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경쾌하게 흘러가고, 세 명의 주인공과 조연급 인물들의 삶이 어우러져 한 편의 서사시가 된다.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 글 전반에 흐르고 있어서 책을 덮고 나면 나의 가족, 친구, 동료, 이웃, 그리고 전혀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잘 대해야 하겠다, 그것이 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정말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로맨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소설의 마지막 장면 (에필로그 제외하고):
Franck looked at the clock.(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랑한다고 말하길 두려워하는 Camille와의 관계에 질려서 영국으로 떠나려는 Franck에게 Camille는 자기가 Franck를 위한 레스토랑을 차려주겠다고 절박하게 제안한다. Franck는 자기는 그런 돈은 필요없다며 "네가 가지 않기를 원해"라고 말해달라며 Camille에게 애원하지만 Camille는 자신은 Franck, 자기 자신, 그리고 모든 것이 두렵다고만 말한다. 그리고 Franck는 예정했던대로 영국으로 떠나려 하고 발췌한 부분이 바로 공항에서 벌어지는 사건.)
"Right. You've got five minutes to get it together and say one six-word sentence. That's doable, no? Go on," he teased, with false joviality. "If six is too much, I'd settle for three. But the right ones, okay? Shit! I didn't punch my ticket. Well?"
Silence.
"Never mind. I guess I'll stay a frog."
He put his big bag on his shoulder and turned his back to her.
He ran to catch up with the ticket collector.
She saw him take his ticket and wave to her.
And the Eurostar slipped between her fingers.
And she began to cry, silly girl that she was.
And all you could see was a little gray dot in the distance.
Her cell rang.
"It's me."
"I know. It tells me on the screen."
"I'm sure you're in the middle of a hyperromantic film, there. I'm sure you're all alone on the platform, like in a film, crying for your lost love in a cloud of white smoke..."
Her own smile brought tears to her eyes.
"Not-not at all," she managed to say, "I-I was just leaving the station, actually."
"Liar," said a voice behind her.
She fell into his arms and held him so so so tight.
Until she felt her skin snap.
She was crying.
All the valves opened and she blew her nose against his shirt, cried some more, letting go of twenty-seven years of solitude, of sorrow, of nasty blows to the head, crying for the cuddles she never had, her mother's madness, the paramedics on their knees on the wall-to-wall carpet, her father's absent gazes, the shit she went through, all those years without any respite, ever, the cold, the pleasure of hunger, the wrong paths taken, the self-imposed betrayals, and always that vertigo, the vertigo at the edge of the abyss and of the bottle. And the doubt, her body always in hiding, and the taste of ether and the fear of never being good enough. And Paulette too. The sweet reality of Paulette, pulverized in five and a half seconds.
Franck closed his jacket round Camille and put his chin on her head.
"There...there," he murmured softly, not knowing if he wanted to say, There, keep crying, or, There, dry your tears.
It was up to her.
Her hair was tickling him, he was covered in snot and he was insanely happy.
Insanely happy.
He smiled.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he was in the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
He rubbed his chin across her scalp.
"C'mon, sweetheart. Don't worry, we'll make it. We won't do any better than anyone else but we won't do any worse, either. We'll make it, you hear? We'll make it. We've got nothing to lose, since we have nothing to begin with. C'mon. Let's go."
에필로그는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는 식으로 끝난다. 어쩐지 미국 소설인 세상 끝의 사랑이 더 프랑스 소설스러운 느낌.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랴. 때로는 이러한 해피엔딩도 필요한 법이다.
2008. 3. 5. 13:22 책/픽션
마이클 커닝햄, 세상 끝의 사랑 (A Home At the End of the World) (1990)
...But as I stood in the water, something happened to me. I don't know if I can explain this. Something cracked. I had lived until then for the future, in a state of continuing expectation, and the process came suddenly to a stop while I stood nude with Bobby and Erich in a shallow platter of freezing water. My father was dead and I myself might very well be dying. My mother had a new haircut, a business and a young lover; a new life that suited her better than her old one had. I had not fathered a child but I loved one as if I was her father-I knew what that was like. I wouldn't say I was happy. I was nothing so simple as happy. I was merely present, perhaps for the first time in my adult life. The moment was unextraordinary. I realized that if I died soon I would have known this, a connection with my life, its errors and cockeyed successes. The chance to be one of three naked men standing in a small body of clear water. I would not die unfulfilled because I'd been here, right here and nowhere else. I didn't speak. Bobby announced that the minute was up, and we took Erich back to shore.글 내내 자신의 삶에 무언가가 결여되었다고 느끼던 조나단은 이렇게 마지막에, 비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상황-아버지가 죽고, 클레어가 아이와 함께 떠났고, 에리히는 죽어가고 있으며, 자신도 곧 그처럼 죽어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충만함을 느낀다. 그렇게 삶은 아이러니한 것이니 닥쳐올 혹은 닥쳐온 비극에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삶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불안정하다고 해서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삶의 충족감은 지극히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오지만은 않으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 확실하고 안정된 관계만이 전부가 아니다. 커닝햄은 앨리스의 삶을 통해서, 그리고 조나단, 바비, 클레어의 unorthodox한 관계를 통해서 그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글은 마치 따뜻한 위로와도 같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격려와도 같다. 이 사회가 인정하는 틀에 들어맞는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그의 글은 많은 힘이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