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08.09.20 North Country (2005) 6
  2. 2008.08.28 My Cousin Vinny
  3. 2008.05.04 Varsity Blues (1999)
  4. 2008.04.27 영화 21을 보고 2
  5. 2007.09.17 거북이도 난다 (Turtles Can Fly) (2005) 6

2008. 9. 20. 15:42 영상물

North Country (2005)

진심으로 분노하게 만드는 영화.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사실까지 알고 나면 더욱 더 분노하게 만드는 영화. 

North Country는 미국의 첫번째 sexual harassment 집단 소송 사건을 다룬다. 이 집단 소송의 주인공들은 미네소타 탄광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이 탄광은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일하게 되기 전 오로지 남성들만 고용했다. 그러나 70년대 말 affirmative action으로 인해 회사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하자 남성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당한다고 생각하고 이 여성 노동자들을 성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한 후 84년, Jenson은 미네소타 정부에 부적합한 고용 환경에 대해 고발을 한다. 장장 14년을 끌고 갈 소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영화에서 묘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겨냥한 집단 괴롭힘은 정말 끔찍하다. 언어적 폭력은 일상이고 이들은 원치 않은 성적 접촉, 폭력, 스토킹에 시달린다. DVD 특별 부록에는 실제 이 사건의 원고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영화가 꽤나 정확하게 그들의 작업 환경을 묘사한다고 말한다. 끔찍하다. 

이러한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사건이 어떻게 14년이나 걸렸는지를 알게 되면 탄광 회사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과 1심 법원에서 잘못된 판결을 내리고 원고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판사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나긴 소송의 종지부를 찍은 8th Circuit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원고들이 어떤 세월을 견뎌야 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판결문을 쓴 판사들의 분노도 느낄 수 있는데 이렇게 강한 어조로 하급 법원 판사들을 비난하는 판결문도 보기 쉬운게 아니다. 

이 탄광회사에서 자행된 성적 괴롭힘이 워낙 광범위하고 심각했기 때문에 1심 법원에서는 회사가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원고들에게 얼마나 배상을 하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여기에서 심각한 법률 시스템의 악용이 벌어진다. 탄광회사의 법률팀은 배상금을 줄이기 위해 원고들의 평생의 의료 기록을 열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즉 회사에서의 성적 괴롭힘이 아닌 다른 요인들로 인해 원고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니 우리는 책임이 별로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배상금을 결정하는 문제를 담당한 판사(Special Master)가 이러한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거기다 원고들은 수일에 걸쳐 자신들의 개인적 삶, 어릴적 받았던 학대, 성경험 등에 대해 모두 증언해야 했는데 그래서 어떤 원고는 증인석에서 강간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또한 심리학/정신과 치료에 대한 심각한 불신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 담당 판사는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증언하려 했던 원고 측 전문가들의 견해를 모조리 배제하는 등 증거 문제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피고측의 손을 들어줘 거의 모욕에 가까울 정도로 적은 금액의 배상금을 책정했다. 8th Circuit 판결문은 Special Master가 저지른 법률적 오류를 모조리 지적한 후 케이스를 다시 하급 법원으로 돌려보내는데 그 이후 결국 양측은 합의를 했고 원고들은 훨씬 많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8th Circuit 판결문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그들이 10년 넘게 겪은 고통을 모두 보상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It should be obvious that the callous pattern and practice of sexual harassment engaged in by Eveleth Mines inevitably destroyed the self-esteem of the working women exposed to it. The emotional harm, brought about by this record of human indecency, sought to destroy the human psyche as well as the human spirit of each plaintiff. The humiliation and degradation suffered by these women is irreparable. Although money damage cannot make these women whole or even begin to repair the injury done, it can serve to set a precedent that in the environment of the working place such hostility will not be tolerated.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도 sexual harassment 케이스들은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쉽지만은 않다. 이 케이스에서는 성적인 괴롭힘이 공개적으로 널리 자행되어서 사건의 증인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대부분 증언하기를 꺼려했다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sexual harassment의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의 증언만이 증거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결국 누구를 믿느냐 하는 문제가 되는데 피해자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들을 트러블 메이커나 감정적인 인간으로 보기 쉽상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이 실제 사건을 다룬 책 Class Action: The Story of Lois Jenson and the Landmark Case that Changed Sexual Harassment Law 를 바탕으로 했다는데 이 책은 볼까 말까 고민이다. 아무래도 읽기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 여성주의자들은 성희롱을 대체할 올바른 용어를 만들어야 된다. 성희롱은 겨우 flirting 정도의 뉘앙스 밖에 없는 것 같단 말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sexual harasser들은 술먹고 실수했으니까 그냥 좀 넘어가자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잘도 해대는거지. 
Posted by Adella

2008. 8. 28. 11:31 영상물

My Cousin Vinny

처음에는 도대체 이 영화를 왜 추천해준건지 추천해준 사람들을 원망하다가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서는 수긍했다. My Cousin Vinny는 유쾌 발랄한 코믹 법정 드라마이다.
변호사 시험을 6번이나 떨어져 로스쿨 졸업한지 6년만에 겨우 변호사가 된 Vinny는 황당하게 살인 혐의로 기소된 사촌의 사건을 맡게 된다. 이 사건이 바로 그의 첫번째 케이스. 처음에는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실수들을 저지르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다. 코미디라서 다 잘 해결되었으니 망정이지 저런 자격 미달의 변호사를 만나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상상만 해도 참을 수 없을 정도다. arraignment에서 유죄를 주장하느냐 무죄를 주장하느냐 그 간단한 질문에도 제대로 답변 못해서 법정모독으로 끌려갔지, probable cause를 결정하는 preliminary hearing에서 제대로 반론 한 번 안했지, 절차법을 몰라서 사사건건 실수 연발이지. 정말 보고 있기 괴로울 정도였다.
그래서 도대체 누가 이 영화 재밌다고 했어?? 라는 생각을 영화 시작한 후 1시간 20분까지 했다. 이런 변호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라도 얻으라는거야 뭐야, 라고 생각했는데 실수 연발에 진지함도 결여되어 있는 듯한 Vinny는 재판이 진행되면서 점점 제대로 된 변호사로 변모해간다. 법정 변호사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절차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타인을 설득하는게 어떤건지는 아는 Vinny는 검사의 케이스의 헛점을 공략해나가며 배심원들에게 설득력 있는 논변을 펼쳐 나간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expert 증인들을 둘러싼 공방인데 보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다. 이건 직접 봐야 됨.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건 등장하는 인물들 탓이 크다. 절차도 제대로 모르고 판사의 말을 마구 무시하는 Vinny를 법정 모독죄로 감옥에 몇 번이나 보냈지만 마지막에는 Vinny를 따뜻하게 격려해주는 판사나, 누가 이길지 경쟁을 하자며 잔뜩 악역 분위기를 풍겨놓고는 마지막에 Vinny한테 감탄했다면서 언제 사냥하러 한번 놀러오라고 하는 검사나, 전혀 무고한 Vinny의 사촌을 하나같이 용의자로 지목하여 마치 음모꾼들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어리숙한 일반 사람들에 불과했던 증인들이나, 그저 선량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뉴욕에서 온 외부인들을 용의자로 몰려는 Alabama 사람들의 음모처럼 보이기 까지 했던 이 사건은 여러 사람들의 대활약에 힘입어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는 승리한다.
엉망진창의 Vinny는 변호사로서의 귀감이 될만한 모범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일깨워준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client를 신뢰하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절차법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호사에게 중요한 미덕은 그것만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것을 이 영화는 일깨워준다.
Posted by Adella

2008. 5. 4. 07:29 영상물

Varsity Blues (1999)

TV에서 Law & Order 보다가 우연찮게 Law & Order 끝나고 틀어준 영화가 생각보다 상당히 재밌는 영화여서 계속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풋볼팀을 다루는 영화인데 날카롭게 고교 스포츠의 문제점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놀랐다. (사실 이런 고교 스포츠 영화를 본 적이 잘 없어서 이런게 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 사회에서 풋볼은 엄청나게 인기있는 스포츠고 그래서 심지어 고등학교 풋볼마저도 엄청 인기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이해도 안가고 실감도 안갔는데 이 영화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텍사스 소도시에서 몇 번이나 디비전 & 주 우승을 차지한 고교 풋볼팀의 쿼터백은 지역의 슈퍼스타이다. (최근 Jena Six 사건에서 백인 학생을 구타하고 살인미수로 기소된 흑인 학생도 고교 풋볼 선수였는데 이 사건을 다룬 The Atlantic Monthly 기사에서 묘사하는 고교 풋볼과 지역사회의 모습과 영화는 꽤나 흡사하다.)
이 고교 풋볼팀을 이끄는 감독은 30년간 감독이었고 이 팀은 이 감독의 지도하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디비전 & 주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영광스러운 기록 뒤에는 마구 소비당한 십대 선수들이 있다. 영화에서 주전 쿼터백은 진통제를 주사 맞아가면서 경기를 뛰는데 그러다가 결국은 한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고 그의 선수 생명은 끝이 난다. 또 다른 선수는 경기에서 머리를 다쳐서 간호사가 다음 경기 출장을 말리지만 감독은 다음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며 결국 그 선수가 다음 경기에도 뛰게 만든다. 경기 뛰기 직전까지 벤치에서 산소 마스크를 쓰고 헐떡거리다가 경기에 출전하는 모습에는 정말 소름 끼쳤다.
영화는 인종주의 문제도 다루는데 풋볼팀의 한 흑인 선수는 자신은 실컷 뛰고도 마지막 터치 다운을 할 때는 감독의 명령에 따라 백인 선수에게 공을 넘겨줘야 한다고 불평을 표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소도시의 고교 풋볼팀을 통해서 여러가지 미국 사회의 모습을 건드린다. 매우 흥미진진한 영화.
Posted by Adella

2008. 4. 27. 15:24 영상물

영화 21을 보고

영화에서 주인공은 하버드 의대 학비를 벌기 위해 MIT 블랙잭 팀에 가담하는데 그는 처음에는 의대 학비만 벌면 손털고 나오겠다고 다짐하지만 곧 도박으로 번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삶에 매혹당하고야 만다. 그래서 목표했던 의대 학비를 다 벌고 나서도 계속 팀에 머문다. 돈은 그렇게 매력적이다. 특히나 그것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누가 그 매력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현실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도박으로 번 돈으로 고가 의류, 악세사리들을 마구 사들이면서 도박에서 버는 돈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독백하는데 정말 그렇다. 저렇게 쉽게 판돈을 두 배로, 세 배로 벌어들일 수 있는데 그깟 소비가 대수랴. 그러나 이러한 불로소득에 대한 욕망은 대가를 치루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도 자신의 욕망에 대한 대가를 치룬다. 판돈이 두배, 세배로 돌아오는 세계에 빠지게 되면 그 앞에서 현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고 돈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러한 욕망은 무섭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릴 수 있다. 이를 위해 치뤄야 할 개인 (혹은 사회)의 희생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Posted by Adella
영화는 첫장면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은 절벽과 그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을 비춘다. 소녀의 옷자락은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고 소녀는 신발을 벗어두고 낙화하듯 절벽에서 추락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영화는 지독히도 낯설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라크와 터키 국경 지대에 있는 쿠르드 족 난민촌이다. 처음 들어본 쿠르드어도, 난민촌의 풍경도, 어른들은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들이 잔뜩 등장하는 풍경도 낯설기 그지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작은 사회를 구축하고 위성TV 수신기를 설치하고 수리할 줄 아는 소년 ('위성'이라고 불리는)의 리더쉽 아래 스스로 살아나간다. 이 아이들은 사방에 널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여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 아이들이 제거한 지뢰는 누가 사는걸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영화는 잠시 지나가듯 제시하는데 아이들에게서 지뢰를 사들이는 상인과 흥정을 하던 '위성'은 그 상인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그렇게 헐값에 사가지만 UN에 비싸게 팔아넘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상인을 비난을 한다. 지뢰제거는 UN의 목표 중 하나인데 그래서 지뢰제거를 촉진하기 위해 제거된 지뢰를 구매라도 하는걸까?

영화에 등장하는 위성TV는 이 영화의 낯설음을 증폭시켜준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있고 온 사방에 매설된 지뢰들로 둘러싸여인채 살고 있는 이들과 첨단 기술을 상징하는 듯한 위성TV라니, 영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위성TV는 전쟁이 언제 터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러나 위성TV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죄다 영어로 제작된 것들 뿐이다. 이들은 TV가 전해주는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지만 그렇다고 이 낯선 언어가 갑자기 이해가 될 리는 없다. 그리하여 마을의 유지격인 노인들은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위성'에게 뉴스를 해석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그는 휘항찬란한 영미권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넋이 나가고 해석해달라고 요구하는 장로들의 요구에 내일 비가 온데요, 라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절벽에서 추락한 소녀. 그녀의 사연은 무엇일까. 전쟁의 참혹함을 온 몸으로 겪은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이 난민촌에 흘러들어온 이 예쁘장한 소녀에게 '위성'은 관심을 표현하지만 이 어린 소녀는 그런 것에는 관심없어 보인다. 거듭된 고통으로 이미 무감각해진듯한 그녀의 사연은 전쟁을 겪은 여성들이 쉽게 겪을만한 그런 일이다. 그것은 너무나 빈번하다는 점에서는 진부하지만 여전히 지나치게 고통스럽다.

소녀를 향한 '위성'의 계속된 구애와 난민촌의 아이들의 일상은 잔잔한듯 흘러가지만 국제적 정세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들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과 미국군의 진군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이건 순전히 추정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분명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라크와 이란의 공동 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지역 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사실에서부터 영화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소한 영화의 스폰서들의 의도라도.) 그렇지만 분명히 이 영화는 단순한 프로파간다는 아니며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견해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세계로 사람들을 조용히 초대한다. 영화는 관조하듯, 과장된 슬픔도 분노도 없이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렇게 드러나는 진실은 그것만으로도 강력하여 보는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영화가 당연한 것처럼 보여주는 어떤 것들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그것이 당연한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비극적이다. 국제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는 당연한듯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잊어버리지만, 이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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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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