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 11:35 책/논픽션
James Munro McPherson, Battle Cry of Freedom: The Civil War Era (1988)
대학 때 서양사를 복수전공 했는데 아무래도 서양사하면 유럽사에 치중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과의 교수들도 대부분 유럽사 전공자들이었다. 그 중에 미국사 전공하신 아주 훌륭한 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수업 스케쥴이 계속 안 맞아서 그 분이 강의하신 미국사 수업은 결국 듣지 못하고 졸업했다. 미국사 수업도 안들은 주제에 용감하게 졸업 논문 주제를 루즈벨트 대통령 시기의 노동법으로 정했는데 4학년 때는 여러가지로 좀 바빠서 제대로 준비도 못했다. 그리하여 논문 발표 때 미국사 전공하신 교수님께 혼나서 좀 부끄럽고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유럽사 쪽 관련 책도 안 읽은지 좀 오래 되서 자세한 건 이제 잘 기억도 안나지만 미국사 쪽은 정말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다. 하워드 진의 책을 읽은 정도가 다니까 미국 역사에 대한 지식은 매우 일천하다. 그래서 당분간 목표는 미국 역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다.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처음 읽은 책이 What Hath God Wrought 였고 이번이 그 두 번째 책인 Battle Cry of Freedom 이다.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 특징은 내러티브 형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인데 그래서 소설책 읽듯이 술술 읽힌다. 사실 글 쓰는 실력이 어느 경지에 오른 저자들의 책을 읽어 보면 소설책보다 역사책이 더 재미있는데 이 책도 그렇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전투 장면을 보면서, 정치적 상황의 변동을 보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자가 이렇게 긴장감 넘치게 전투, 정치, 외교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저자의 남북전쟁에 대한 시각과도 관계가 있다.
그는 남부에게는 도덕적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전쟁을 계속 이끌어나갈 의지가 없어서 남부가 졌다, 라든지, 북부의 압도적인 경제력을 감안하면 남부가 지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라든지, 북부의 지도자들이 남부의 지도자들보다 리더십이 더 뛰어났다, 와 같은 설명을 거부한다. 그가 보기에 북부의 승리는 전혀 필연적이지 않았다. 남북전쟁 시기동안 일어났던 사건들 중 한 가지만 다른 결과가 나왔더라도 남부는 독립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몇 가지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전투들의 경우가 그렇고 링컨이 재선에 실패하고 평화 협상을 주장했던 민주당이 대신 정권을 잡았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의 사건들이 중요했으니 전쟁 기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책에 대한 뉴욕 타임즈의 리뷰를 보면 남북전쟁은 미국사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시기라고 한다. 그럴만도 하구나, 싶은게 현재의 미국을 염두에 두고 이 남북전쟁 시기를 다룬 책을 읽으면 기분이 묘하다. 예를 들어 나는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미국에서 가장 궁핍한 주 중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남북전쟁 발발하기 이전부터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남부의 중요한 주 중 하나였다. 미 합중국에서 처음 분리를 선언하고 다른 주들을 선동한 것이 바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였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가면 'South Carolina must be destroyed'라는 챕터가 있는데 북부군이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들어갔을 때 많은 북부 병사들은 분리를 제일 먼저 주창한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전쟁의 막바지에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북부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것이 영구적으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 것일까?
웨스트 버지니아의 경우도 재미있다. 나는 항상 왜 웨스트 버지니아 주가 따로 있을까 궁금해 했는데 그 해답을 이 책을 통해서 얻었다. 남부주들이 분리 독립을 선언했을 때 남부주들의 선두주자 격인 버지니아 역시 분리 선언을 했는데 노예 소유주도 별로 없고 리치몬드와도 그리 가깝게 느끼지 않은 셰난도 계곡 근방의 사람들은 연방으로부터의 분리에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북부의 지원을 받아 웨스트 버지니아라는 이름으로 연방에 다시 가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지역에는 남부에 더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남부군을 지원하게 된다. 지형지세를 이용해 남부군은 게릴라 작전을 펼치고 이에 호되게 당한 북부군은 이 지역을 아주 초토화시킨다. 원래 이 지역이 그렇게 부유한 동네는 아니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러한 파괴 행위들이 현재의 빈곤한 웨스트 버지니아 경제에 상당 부분 기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 개별 주들 뿐만 아니라 남부 전체가 남북전쟁 이후 그 이전의 지위를 영원히 회복하지 못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남부의 경제는 몰락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 경제의 중심은 북쪽에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비록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인들의 가치관까지는 옹호하지 못하더라도 선조들이 남북전쟁에 참여했을 남부인들에게 남북전쟁은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발견한 책이 Confederates in the attic: dispatches from the unfinished civil war이라는 책이다. 차마 남부가 고향인 친구들한테 물어보긴 좀 민감한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쓴 저자 덕에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도 다음에 읽을 책 리스트에 올라갔다.
Posted by
Ad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