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일도 한가해지고 폭설 때문에 어디 갈 수도 없어서 하루종일 미뤄둔 책을 읽었다. 드디어 몇 달을 붙들고 있었던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초토화한 원자폭탄 개발 과정을 그려내는 역사책이다. 20세기 초의 물리학자들의 발견부터 시작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까지 그려내는 이 책은 경이로울 정도로 꼼꼼하다.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과학적 의미를 상세히 설명할 뿐만 아니라 물리학계에 중요한 공헌한 과학자들의 캐릭터까지 그려내고 필요한 부분에는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예를 들면 물리학자들의 치열한 연구과정과 대발견, 환희와 좌절을 그려내면서 2차 세계대전의 진행과정도 설명을 하는데 이러한 배경을 설명함으로써 어째서 물리학자들이 후에 원폭 개발에 가담하게 되는지 일종의 당위성을 부여한다. 원폭 개발에 필요한 과학적 발견이 다 이뤄진 후에 이야기는 맨하탄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Los Alamos에 연구실을 세우고 세계적인 수준의 물리학자들을 잔뜩 모아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책 전반부에 나오는데 나치가 헝가리 등에서 뛰어난 유대계 과학자들을 학계에서 몰아내는 바람에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고 결국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맨하탄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원폭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시작된다. 온갖 이론적/기술적인 어려움을 극복한 후 원폭 제작, 성공적인 Trinity 테스트, 그리고 온갖 고려 끝에 결국 일본의 두 도시에 원폭을 투하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숨가쁘게 펼쳐진다. 책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원폭 희생자/생존자들의 증언를 통해 원폭으로 인해 지옥같은 곳으로 변해버린 이 두 도시의 끔찍한 광경을 그려낸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그 이후 미소 군비 경쟁과 그 상황에 대한 저자의 소망을 다룬다. (아직 냉전이 막을 내리기 전에 쓰여진 책이라서 이 에필로그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지만 전혀 다른 문제에 직면해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러한 에필로그마저 역사책을 읽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냉전은 종결되었지만 핵문제가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만큼 핵무기가 도대체 뭔지, 이렇게 끔찍한 물건이 어떻게 인류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한 분께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책 뒷커버에 보면 이 책에도 등장하는 몇몇 노벨 물리학 수상자들과 아이작 아시모프, 칼 세이건등의 쟁쟁한 인물들이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퓰리처 상 수상작이기도 함.) 책의 품질은 보장. 다만 나처럼 이쪽 분야에 전혀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나가는게 꽤 고생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도 고생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후속작으로는 The Making of the Hydrogen Bomb이 있는데 지금 당장 읽을 엄두는 안나지만 나중에 읽어볼까 싶다. (The Making of the Atomic Bomb에 이미 H-Bomb 얘기가 좀 나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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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della
연휴를 맞이하여 집에서 편안하게 뒹굴거리다가 집에 굴러다니는 이 책을 발견했다. 서른의 당신에게라니, 이제 서른도 몇 년 남지 않은 입장에서 솔깃해지는 제목 아닌가. 평소 에세이를 즐겨 읽지는 않지만, 연휴니까,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마치 블로그의 글을 읽는 것과 같았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제외하자면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도 없는데 그게 마치 블로그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수다글, 영화나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글, 자기 일에 대한 글 등이 뒤섞여 있었다. 어떤 글들은 그저 그랬고 어떤 글들은 찡하기도 했고, 어떤 글들은 흥미진진했다. (주로 일 관련 글들이 재미있었다.) 마치 블로그의 글을 죽 읽어나가다보면 그 블로거에 대해 조금씩 알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든 글이 재밌고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솔직하게 풀어놓은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잘 몰랐던 저자의 삶의 단면이 조금씩 보이는 듯 했다.
이 책을 위해 쓴 글도 있고 저자가 다른 곳에서 쓴 글도 있었는데 그래서 에세이집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듯한 글도 포함되어서 좀 아쉬웠다. 그리고 서른의 당신에게라는 제목은 책 내용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속은 기분이었다. 허스토리에 실은 <나의 서른과 당신의 서른>이라는 짧은 글에서 나온 제목인 것 같은데 이 글 자체도 매우 짧고 그다지 인상적인 글도 아니라 표제글도 삼기엔 부족해 보이고 전체 글의 테마도 서른의 당신에게 보내는 인생철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저자인만큼 이렇게 어수선한 에세이 글이 아니라 좀 더 탄탄하게 기획해서 공들인 책이 나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필력이 만만찮아 보이니 더 아쉽다.
Posted by Adella

총, 균, 쇠에서 왜, 어떻게 문명이 발생하고 발전했는지 다뤘던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책에서는 어떻게 문명이 붕괴하는지를 다룬다. 여기서 그는 다섯 가지 요인으로 문명의 붕괴를 설명한다: (1) 인간이 환경에 가한 데미지, (2) 기후 변화, (3) 적대적 이웃, (4) 우호적 이웃의 지원 감소, (5) 어려움에 직면한 그 사회의 대응 방식. 이러한 프레임 자체는 시시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총, 균, 쇠에서와 마찬가지로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 전반부에서는 과거의 문명을 다루고 (태평양 섬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 마야 문명, 바이킹, 그린랜드) 후반부에서는 현재의 문명을 다룬다 (르완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하이티,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저자는 여전히 환경결정론자로 비판을 받고 있는 모양인지 이 책에서도 자신이 환경결정론자가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데 따라서 그는 비슷한 자연환경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과를 낳은 사회들을 자세히 비교한다. (e.g. 그린랜드의 이누이트-바이킹, 도미니카 공화국-하이티). 과거의 문명 사례도 흥미롭지만 현재의 문명 사례를 분석한 부분은 특히 더 흥미롭게 읽었다. 예를 들어, 르완다의 사례에서 저자는 이 나라의 비극의 배경에는 높은 인구 밀도와 각 가구가 소유하는 경작지 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갈등이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기까지 다룬 사례들을 바탕으로 왜 어떤 사회들은 재앙에 가까운 결정을 내리고 멸망하는지를 설명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이끌어 낸다. 15번째 챕터는 매우 흥미진진 했는데 이 챕터에서는 기업과 환경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저자는 여기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석유, 광산, 벌목, 수산업 기업들을 소개하며 시민 사회가 기업과 협조하여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요즘 시민 사회의 주요 운동 중 하나인 소비자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e.g. 벌목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벌목 회사를 직접 압박할 것이 아니라 나무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Home Depot와 같은 회사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낫다. 광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광산을 보이콧 할 것이 아니라 티파니를 보이콧 해야 한다.)

다섯 가지 요인으로 문명의 붕괴를 설명한다고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결국 어떻게 환경 파괴가 문명 사회를 붕괴를 낳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 챕터를 환경 문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견해나 기술 발전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 등을 반박하는데 할애한다. 우리는 명백한 환경적 재앙에 직면해 올바른 선택을 하고 붕괴를 피할 것인가, 아니면 붕괴한 과거의 문명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이 책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노학자가 우리가 전자의 길을 선택하길 바라며 쓴 책이다. 

Posted by Adella
"평평해진 세계"에서 국가가, 기업이,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통찰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는 책.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세계가 어떻게 평평해졌는지 설명하고 있고 (이 부분은 프리드만이 설명하는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두번째 부분에서는 미국 사회의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고 (매우 통찰력있고 유용한 커리어 조언도 제시한다. 이 부분이 특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음.) 세 번째 부분에서는 개발도상국 정부들에게, 네 번째 부분에서는 기업들에게 조언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평평해지지 않은 세계의 모습을 조명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 챕터가 원래 저자의 전문 분야에 해당된다. 알 카에다와 중동 문제를 집중 조명.)
세계화에 따른 문제점을 정직하게 인지하고 심각성을 논의하지만 한탄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 나가는 이 책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에너지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저자가 언론인이라서 그런지 글도 아주 맛깔나게 썼다. 필독 도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
Posted by Adella
음, 복잡한 책이다. 역시 인문학은 쉽지 않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인용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을 보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하지만 어디 실상이 그러한가. 평화주의자들마저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잔혹한 전쟁의 현실을 담은 사진이 전쟁을 멈출 수 없다면 전쟁 사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의문점에서 출발하여 전쟁 사진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전쟁 사진은 감상자에게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보며 은밀한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전쟁 사진은 중립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여주는 듯 싶지만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e.g. 팔레스타인 희생자와 이스라엘 희생자.) 또한 전쟁의 희생자가 나와 같은 인종 혹은 같은 지역 출신인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미국인들에게 유럽의 전쟁과 아프리카의 전쟁 사진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떻게 이곳에서 저런 끔찍한 일이.)
전쟁 사진은 베트남전 때처럼 반전 운동을 촉발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의 잔혹함에 압도된 나머지 오히려 감상자들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를 취하게 될 수 있다. (내가 뭘 한들 소용 있겠어. 인간은 항상 이런 잔인한 일을 저질러 왔는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쟁 사진에 노출되면서 무디어진다. 그렇다고 전쟁 사진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사진은 여전히 효과적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전달하며 지구 한켠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상기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역시 사진만으로 그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해답을 제시한 후 또 다시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글이 진행되니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런 이슈를 다룬 다른 책도 읽어본 적 없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따라가기 벅찬 책이긴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읽어볼만하다. (두껍지도 않으니.)
저자는 책 말미에 자신의 작업에 영감을 준 글들을 소개하는데 그 중 읽어보고 싶은 글:
Secular Icons: Looking at Photographs from Nazi Concentration Camps (논문)
Remembering to Forget: Holocaust Memory Through the Camera's Eye (책)
Posted by Ad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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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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